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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식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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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옛생각 작성일10-01-31 22:42 조회1,960회 댓글0건 내용복사  즐겨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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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학식 풍경


  우리들은 일학년 어서어서 배우자

  OO하는 참새들아 같이 배우자


 병아리 같은 꼬마들이 입을 모아 노래를 부르며 꼬물꼬물 한꺼번에 몰려있는 모습을 바라보는 엄마들의 눈 꼬리가 가물가물 허물어질 때, 이제 봄 햇살은 모처럼 꺼내 입은 모본단 저고리의 둥그런 어깨선 위에 미끄러진다. 때는 바야흐로 1965년 3월인 것이다.

 그래, 나는 바로 그 해인 1965년 3월에 국민학교에 입학을 했다. 부산 성지국민학교 제 44회 입학생 1학년 14반 34번으로서. 가슴팍에 손수건 삼등분으로 접어 삔침으로 달고 아껴 입던 옷, 빨래 짬을 피해 입학식 날짜에 맞춰 입고서. 그날 아침 문을 나서며 아버지는 뭐라 하셨나, 기억에 없다. 

 ‘셋째 놈이 오늘 입학하는 날이지. 줄줄이 학교 가는구나. 어쨌든 공부는 시켜야 되니….’ 

 아마도 이런 중얼거림 쯤으로 고단한 어깨 위에 실린 가장의 책무를 다시 떠올렸을지도. 입학식 날 엄마는 무슨 일 때문이었던지 학교에 따라갈 수 없는 형편이어서 마침 같은 학교 다니던 누나가 나를 이끌고 학교로 갔다. 학교 잘 데리고 가서 내 반 찾아 세워놓고 교실로 가라는 엄마의 신신당부를 들었겠지만 그래봐야 기껏 3학년, 덜 여문 머리로 그 막중한 책임을 떠안았으니 누나가 머리가 아팠을 것 같다. 엄마는 이렇게 ‘하필 입학식 날’ 날 데리고 가지 못한 일이 죄밑이 되었던지 다른 아이들보다 며칠 더 오래 나의 등굣길에 동행하는 것으로 벌충을 했다.

 부산 서면 일대의 아이들을 모조리 불러 모은 성지국민학교는 일종의 거점학교 비슷해서 그 규모가 엄청났다. 한 학년에 보통 열 댓 학급씩, 한 반의 학생 수도 예순 명을 넘기기 예사였다. 오전반, 오후반의 2부제 수업에다 입학 후 한 동안은 배정된 교실이 없었던 것도 같다. 시간이 좀 흐르고 난 뒤 부전국민학교니, 광무국민학교니 하는 규모가 좀 작은 새로운 학교들이 한 둘씩 생겨나 아이들을 갈라 갔다.

 외할매 말씀 맞다나 ‘쉬근이 멀쩡’하던 나는 엄마가 따라오지 않은 것도 별로 개의치 않고 아이들 틈에 섞여 들어 곁눈질로 주변을 살피는데 성능 안 좋은 확성기 소리는 왜 그렇게 왕왕대는 것이며 대책 없는 조무래기들은 왜 그다지 나부대는 것인지 머리가 다 지끈거렸다. “앞으로오~ 나란힛!” 구령에 맞춰 팔을 쭉 펴들고 줄을 맞추는데 이리 꾸불, 저리 꾸불 도무지 맞지 않는 줄과 아픈 팔 때문에 속이 상했다. 답답해 마지않은 담임선생님이 줄 가운데로 뛰어들어 아이들 어깨 죽지를 잡아채며 줄을 맞춰 세우는데 그 손길이 사뭇 우악스러워 나는 잠시 어리둥절한 기분이었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우리 선생님은 그 전 해, 형의 6학년 담임을 하셨던 분이었다. 중키의 호리호리한 몸피에다 얼굴에는 귀티가 있는 미남 선생님. 얼마 뒤 엄마와 수인사를 하는 걸 곁에서 들었는데 형이 중학교를 1차에 붙지 못한 것을 염두에 둔 듯,

 “애가 똑똑해서 상석이 원풀이 할 깁니다.”

 “예…, 깜냥에는 좀 민첩한 편입니다….”

 이상하게도 엄마는 남들이 나를 두고 칭찬 비스무리한 말을 할라치면 꼭 저 ‘민첩하다’는 표현으로 대꾸를 하곤 했다. 민첩하다…라, 운동선수가 될 걸 그랬나. 하지만 선생님의 예상은 빗나가도 한참을 빗나가 버렸고 엄마의 짐작도 영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교실이 부족했으리라. 우리는 거의 삼월 한 달 내내 운동장 여기저기 볕바른 곳에 쭈그리고 앉아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팔던 석필석 조각을 하나씩 사가서는 땅바닥에다 이름자나 쓰는 것으로 시간을 때웠다. 박진환이란 아이의 반듯하고 단정한 글씨에 비하면 괴발개발, 마음먹은 대로 예쁘게 써지지 않는 글씨 때문에 나는 일쑤 일어나 고무신으로 벅벅 문대버리기에 바빴다. 자욱하게 먼지가 피어오르고 옆의 아이들이 눈을 찌푸리며 올려다본다.

 “다 아는 글자 머 한다꼬 자꾸 쓸기고. 내사 안 쓸란다.”


 학교 가는 일이 본궤도에 오른 것은 4월이나 되어서였을 것이다. 이젠 웬만큼 등굣길도 발에 익어 혼자서도 촐랑촐랑 곧잘 다녔다. 누구 것이었던지, 물려받은 낡은 란도셀 가방, 가방 덮개엔 교통신호 교육용으로 학교에서 나눠준 삼색 신호등이 그려진 노란 천을 씌워서 묶었다. 영악하게도 가방의 낡은 티를 가릴 수 있어 좋으리라 생각했던 모양인데 이게 또 칭찬거리가 될 줄이야. 다른 애들은 고작 한 이틀이나 하고 다닌 걸로 끝이었지만 난 이것을 몇 번 빨아서 빛깔이 바랠 때까지 묶고 다녔으니. 게다가 일단 한 번 칭찬을 듣고 난 다음이라 맘대로 풀어버릴 수도 없어 나중엔 나도 슬슬 지겨워졌다. 아무 일이 없는데도 공연히 몸을 앞으로 숙이고 고개는 쭉 내민 채 팔을 팔랑개비처럼 휘저으며 냅다 달려가면 가방에 든 나무필통이 탈칵탈칵 소리를 내곤했다.  

 행랑채 마냥 운동장 한 쪽 구석에 본관건물과 직각 방향으로 앉은 낡은 교사(校舍)가 저학년들 몫이었다. 함석지붕에 콜타르칠을 한 판자를 길게 이어 지은 낡은 건물이었다. 바닥을 바른 시멘트는 군데군데 깨어졌고 비가 오면 어김없이 지붕도 샜다. 나무로 짠 책상의 가운데에는 반드시 칼로 새긴 선이 길게 나 있다. 내 물건이 이 선을 넘어가면 안 된다. 짝지의 것도 마찬가지다. 이런 책상이 가로로 다섯 줄, 앞뒤로 예닐곱 줄 놓여 있다. 일주일마다 한 줄씩 옆으로 옮겨 앉는다. 앞뒤로는 키 순서대로 앉기 때문에 고정이었지만.

 교실 앞쪽 왼편 구석에 선생님의 책상이 놓이고 커다란 초록색 칠판, 그 옆으로 시간표 따위가 붙었다. 선생님이 팔을 커다랗게 휘저으며 칠판지우개로 판서한 글씨를 쓰윽쓰윽 닦을 때 뭉텅뭉텅 사라지던 아기자기한 글씨들이 아까웠다. 교실마다 바깥벽엔 그 지우개를 터느라 두드린 곳에 하얗게 분필가루가 묻어 있어서 멀리서 보면 거뭇한 벽에 일정한 간격으로 점점이 번진 얼룩 같았다. 분필을 곧추 세워 위에서 아래로 빠르게 그어 내리면 따라라라라락 소리와 함께 점선이 생겨나는 게 신기해서 쉬는 시간에 따라해 보지만 잘 되지 않았다. 교실 뒤편 벽은 아이들이 미술시간에 그린 그림들이나, 알록달록한 색종이를 오려 사슬처럼 만든 공작품 따위로 꾸민 게시판이다. 

 교사 뒤편의 응달에 시멘트 블록으로 지어진 변소는 양 옆을 틔워 아예 출입문을 달지도 않은 모습이다. 변기도 없다. 한쪽은 남자애들이 늘어서서 오줌을 누는 곳이고 다른 쪽은 허술한 판자문이 달려있는 똥칸이 열 개쯤 있다. 사내 녀석들은 한 단 높은 발받침 위에 올라서서 오줌을 지리는데 오줌발이 닿는 벽은 오줌 때가 끼어 희끄무레하고 지린내가 사뭇 코를 찔렀다. 별난 놈들은 이때 꼭 고추를 잡고 위로 쳐들어 오줌발을 한 치라도 더 벽 위쪽으로 쏘아대기 위해 끙끙 용을 쓰곤 했다. 그도 아니면 고추를 이리저리 흔들어 마른 벽에다 그림을 거리거나. 5학년 때였던가, 신축 교사가 완공되었을 때 거기 화장실에 처음으로 소변기가 설치되었다. 하얗게 반짝이는 둥그런 변기가 좋아보였던지 웬 해찰궂은 녀석이 그 위에 걸터앉아 굴려보다가 그만 변기 목을 부러뜨려 혼이 난 적이 있었는데 깨진 사기 조각에 엉덩이를 베기라도 했으면 어쩔 뻔했나.


 이 무렵의 나를 흥분에 떨게 한 것은 단연코 급식으로 나왔던 옥수수 빵이다. 글쎄… 이것이 빵이었을까. 그것은 오히려 난데없이 주어지던 한 뭉텅이의 황홀이었다. 샛노란 옥수수 가루를 두툼하게 깔아 구워낸 빵은 적당히 옥수수 입자가 입에 씹히며 달큰한 향기와 고소함이 혀에 착착 감기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토록 맛있는 빵이 야속하게도 양이 넉넉지는 않아 한 반 아이들 모두에게 몫이 돌아가지는 않았다. 그래서 애들을 반분하여 번갈아 나눠줄 수밖에 없었다. 빵을 받는 날은 날대로, 받지 못하는 날은 또 그날대로 나는 저 명치 부근에 실린 안달로 애가 탈 지경이었다. 수북이 빵을 담은 광주리가 도착하면 교실은 돌연 술렁임으로 가득 찬다. 차례가 돌아온 아이들의 득의양양함과 다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아이들의 한없는 선망이 뒤섞여 이 작은 소용돌이는 좀처럼 그치지 않는다.

 “좀 도.”

 “으은다. 니도 저번에 안 줐다 아이가.”

 “담에는 주께. 함만 비 묵자.”

 “담에 니 받을 때 니 다 묵으라모.”

 “아이다. 내가 만다꼬 다 묵을 기고.” 

 “진짜로 줄래?”

 “으응. 담에는 진짜 준다.”

 그래서 한 귀퉁이 나눠먹었는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 빵과 더불어 내 마음에 뚜렷이 남아있는 장면 하나는 있다. 당시 우리학교에는 ‘고아원 아이’들이 거의 모든 학년의 반에 드문드문 섞여 있었는데, 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던 고아원에 몸을 붙이고 있던 그 아이들은 모습에서부터 여느 아이들과는 달랐다. 구호물품이었겠지, 타탄체크 무늬의 옷감으로 똑같은 지은 옷을 입은 것하며 모두들 머리를 빡빡 깎고 있던 모습이 그랬다. 또한 한 반의 다른 아이들보다 다들 나이가 한두 살은 많았던 것도. 토요일 오후나 일요일이면 고아원과는 좀 떨어진 공터에 마련된 채소밭에 이 아이들이 단체로 몰려나와 노역을 하던 모습이 종종 눈에 띄곤 했다. 김칫거리가 될 배추며 무를 제 손으로 기르던 모양이었다.

 고아원 아이들은 다른 아이들과 잘 섞이지 않았다. 등하교할 때에도 저희들끼리 무리를 지어 다녔고 어쩌다 교실에서 싸움이라도 붙을라치면 고만고만한 조무래기들의 투닥거림과는 달리 좀 악착스런 데가 있었다. 결코 먼저 우는 법이 없이 기어이 맞붙은 놈을 울리고 나서야 떨어졌으니까. 자연히 아이들은 그들을 또래들과는 좀 다른, 별종 취급을 하며 무서워하거나 꺼렸고 그들 또한 늘 어떤 경계 너머를 바라보는 듯한 암울한 표정으로 말없이 데면데면 지낼 뿐이었다.

 어쨌든 일학년의 우리 반에 있던 고아원 아이(그 아이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가 빵을 받을 차례였다. 빵 하나를 건네받은 그 아이가 막 돌아섰을 때, 선생님이 그 애를 불러 세워 빵 하나를 더 얹어 주었다. 그 애는 순간 멈칫하더니 조용히 덤으로 받은 것을 내려놓고 돌아섰다. 빵을 든 두 손을 배꼽 부근에 모두어 붙이고 자리로 돌아오는 그 아이의 표정은 결연하고도 엄숙했다. 그리고는 조금 떼어 먹지도 않은 온전한 빵을 책들 위에 올려서 조심스레 책보를 싸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 애와 눈이 마주쳤을 때 나는 마치 불에 덴 것처럼 놀라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왜 그렇게 놀랐던지 지금도 그 이유를 뚜렷이 알지 못한다.   

 아마도 사람이 뭔가를 배운다거나 깨닫는다는 것은 이런 경우를 두고 말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오래 전의 어느 날, 슬쩍 스쳐지나간 그 사소한 한 장면이 이토록 오래 내 마음에 남아 있다면 그것은 알게 모르게 나의 생각이 여물어 가는데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또한 나는, 어려서 미처 생각지 못했던 그 장면의 의미를 어떤 식으로 곱씹으며 기억하려 했던 것일까.

  

 적어놓고 보니 한결같이 꾀죄죄하고 남루한 풍경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면 시간이 빚어낸 착시현상일 뿐, 당시로 돌아가 보면 그 모든 것은 너무나도 엄연하고 지당한 현실이었으니, 그 시간과 풍경 속에서 서서히 모양을 잡아가고 있던 어린 녀석들의 제가끔 인생의 밑그림들만이 오직 눈물겨운 진실일 터이다. 

             

 (맨 앞의 ‘OO’이 생각 날듯 말듯 하면서도 입 안에서 맴맴 돌 뿐 도저히 기억이 안 나 공란으로 비워 놓았는데, 술을 한 잔 먹고 난 다음 들여다보니 불현듯 생각이 났다. ‘구경’이다! 구경하는 참새들아 같이 배우자! 이 낱말이 떠오르지 않아 나는 한 나절을 끙끙대며 저 동그라미 안에 들어갈 말을 끼워 넣어 보지 않았던가. 노래하는, 지저귀는, 짹짹하는, 날아가는, 심지어 울부짖는…. 아, 술은 이래서 좋은 것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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