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에 다시 찾아오지 않을 기회다(마스크 생산업체 대표).”
재난은 아픔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돈벌이의 기회다. 매정하지만 현실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의 공포가 휘몰아친 지금은 마스크에서 돈 냄새를 맡은 기업인들의 물밑 거래가 한창이다. 싼값에 사들인 마스크를 법의 테두리 안에서 최대한 비싸게, 뭉텅이로 파는 게 그들에겐 지상 과제다.
‘마스크 대란’이 한창인 가운데 중앙일보에 한 통의 제보가 도착했다. 유통업체 대표 김모씨와 마스크 생산업체 대표 임모씨 사이에서 마스크 200만장 공급 계약 파기를 둘러싸고 벌어진 사건이다. 사건을 뜯어보니 전염병이란 재난 상황에서 마스크 계약을 둘러싸고 빚어낸 인간의 욕심, 갑을 관계를 둘러싼 약육강식의 비즈니스 세계, 법이 지켜줄 수 없는 영역에 대한 탄식이 여지없이 묻어났다. 당사자 취재와 입수한 녹취록, 동영상을 바탕으로 최근 보름간 벌어진 사건의 전말을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풀어냈다.
김씨, 돈 냄새를 맡다
경기도·강원도 일대를 뒤져 수소문한 끝에 찾은 마스크 공장 5곳은 이미 중국에 물량을 넘기기로 한 뒤였다. 그러던 중 한 곳에서 ”경기도 포천에서 임씨가 마스크를 만드는데 거기 한 번 연락해보겠느냐“는 얘기를 들었다. 임씨에게 연락한 뒤 연휴 중인 28일 공장에 들렀다. 기계에서 쏟아져 나오는 마스크를 두 눈으로 확인했다. 마스크가 돈다발로 보였다. 임씨와 30일 계약하기로 하고 공장을 나섰다.
현금 3억1200만원을 구하라
‘임씨는 김씨에게 마스크 1개당 312원에 200만개를 공급한다. 2월 12일까지 100만개, 16일까지 100만개를 납품한다. 김씨는 계약과 동시에 임씨에게 대금의 50%를, 납품을 완료했을 때 나머지 50%를 지급한다. 계약을 어길 경우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계약 대금은 총 6억2400만원. 50%인 3억1200만원은 이날 임씨가 요구하는 대로 현금으로 건넸다. 1억원은 도저히 구할 수 없어 지인에게 급히 빌렸다.
임씨, 더 진한 돈 냄새를 맡다
“계약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물건을 못 댈 거 같습니다.”
약육강식의 세계
벽과 얘기하는 것 같았다. 결국 임씨는 김씨가 보는 앞에서 중국 상인과 500만장 공급 계약을 맺었다. 돌아오는 길에 눈물이 났다. ‘다들 각자의 욕심을 좇는구나’.
씁쓸한 진행형
법은 누굴 지켜주나. 변호사에게 상담부터 받았다. 하지만 임씨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걸더라도 계약서에 따른 위약금 전부를 받는 것 외에 거래처 단절 같은 2차 피해까지 보상받기는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
정부는 무엇일까. 마스크 수급안정조치를 하고, 매점매석(買占賣惜·사재기)을 단속한다더니 장사치끼리 거래는 손댈 수 없는 걸까. 김씨는 지난 8일 임씨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신고했다. 오늘도 식약처에 전화를 걸었다. “조사 중”이란 답이 돌아왔다. 그가 사기로 한 마스크 200만장은 조만간 서해를 건너 중국으로 향할 것이다.